전은경의 맥락/묵상

더 글로리 감상 1 (제목이 핵심이다)

전은경 2023. 3. 23. 18:19
 

더 글로리 시즌 2 정주행 소감.
(소감 시즌1이닷 ㅋ)

 

제일 인상깊은 포인트는 역시 드라마 제목이었다. (이건 기막히게 제목을 잘 지었다는 뜻이다.)
작가가 외치고 싶은 바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도 '더 글로리'란 제목이라고 생각된다.
('the'가 붙어야만 했던 것도 이해된다.)

흔히 피해자가 특정 피해를 입을 때 훼손은
맞은 부위, 심한 소리를 들은 귀,
좀 깊이 들어가면 상한 감정처럼
폭력과 직접 맞닿은 부분의 훼손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작가는 예리하게도 진짜 피해는
피해자의 영광이 훼손되는 데 있다는 것을 포착했고 또 그걸 효과적으로 부각시켰다.

가해자 중 사회적인 케릭터들은
'사람이 사람이라고
어떻게 똑같은 사람이냐'는 말처럼
또는 드라마 속 박연진의 대사인
'내가 네 삶을 지옥으로 만든 게 아냐,
네 삶은 원래 지옥이었잖아'처럼
사람은 폭력을 가해도 괜찮은 대단한 사람
(혹은 최소한 폭력을 당하면 절대로 안되는 사람)과
아무리 심한 폭력을 당해도 괜찮은
먼지나 버러지같은 하찮은 사람이 엄연히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가해행위도 버리지류같은 피해자가 원래
약하고 하찮아서 당하고 죽은거니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저지른 것이고,
가해행위가 끝난 이후에도
가해행위에 대한 해석을 통해서 ,
또 그 해석이 드러나는 언행을 통해서
'별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라고
언제까지나 외치는 것이다.
한마디로 절대로 폭력을 당하면 안되는 사람은 영광을 가진 자, 폭력을 당해도 괜찮은 사람은 영광이 없는 자로 볼 수 있는데
세상이 어떻게 느껴지도록 한들 실제로는
폭력을 당해도 되는 인간은 단 한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폭력은 모든 사람이 당연히 지니고 있는 영광을 뺏고 훼손하는 행위이다.

더 글로리 드라마는 요약하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가해자들은 '피해자는 원래 마구 당해도 되는 영광이 없는 자이다'라고 소리치고
피해자들은 '아니 나는 언제나 영광을 지닌 자였다'라고 맞서서 소리치는 드라마이다.
그리고 작가는 피해자들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기로 작정한 드라마이다.

(작가가 뭘 보여주고 싶다고 작정하면
등장인물 중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등장인물이 얼마나 부유하고 매력적이고 온갖 종류의 힘을 다 가졌어도 그 힘으로 작가를 회유할 수도, 협박할 수도 없다.
등장인물과 작가는 그렇게 차원이 다르다. )

새벽 4시에 눈과 몸은 피곤하지만
빠르게 피가 순환하듯이 생각들이 범람해서
실제로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잠깐 눈붙여야 하는 짬에도
글을 쓰고 싶을 만큼 말이다.

그리고 솔직히 얼마 전에 봤던
전두환 손자 전우원씨의 스틸샷들이 생각났다.
그는 확실히 심리적 균형이 무너진 불안정한 상태였지만 그의 표현들 가운데서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근본적으로 영광을 지닌 자들이었음을 인정하는 표현들이 섞여있었다.
(그런데 영광을 가진 자들을 훼손한 죄의 크기가 그 영광의 무게만큼 적나라하게 다가온다면 심리적 균형이 무너지는 게 오히려 정상적이겠다)

그의 가족들은 피해자들이 그런 일을 절대로 당하면 안되는, 영광을 지닌 존재라는 의미의 그의 표현들을 심리적 균형이 무너진 증상이라고 대중들이 생각하기를 바란다.
어디서 미칠지경으로 만드는 원인과 그 원인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인 미친 듯한 상태를 뒤죽박죽 섞어서 두루뭉실 다 미친소리로 퉁치려하는가.

나는 적어도 어떤 유족들은 그들이 40년 이상 외치며 인정받길 원했던 표현인 '피해자들은 그런 일을 당해서는 안되는 사람들이다. 피해자들이 그런 일을 당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를
가해자의 손자가 똑같이 입밖에 내는 것으로 아주 미세하게라도 후련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나 혼자의 외침이 아니라 합창일 때 다르고 적진의 한가운데서 함께 외치는 것은 또 다르다.


이 드라마는 오픈하자 32개국에서 1위를 차지하고 비영어권 1위를 차지했다고 들었고 오픈날 넷플릭스 서버가 한동안 마비되는 사태가 최초로 발생하기도 했다고 들었다.
'피해자는 본래 영광을 지닌 자이고 그 영광을 회복해야한다'는 외침이 그렇게 널리 뜨겁게 퍼지고 있다는 뜻이다.
(쓰고 싶은 내용이 몇개 더 있지만 진짜 너무 졸려서 20분이라도 자고 학교 가야겠다 ㅜㅜ... 자고 꽃단장하고 학교 다녀와서 이따가 써야지)



ps1.

스크린 큰 친정집 마루에서 거창한 치맥이랑 마라탕 파티를 하면서 더 글로리 시즌2 정주행 초대형 플렉스를 해서 새벽 4시에 자고 애들 학교 데려다주느라 6시 20분에 일어나서 학교를 보냈지만, 또 11시까지 참관수업을 들어갈 예정이라 눈붙여야 하지만 감상은 원래 따끈할 때 쓰는 게 맛이라 지금 쓴다.

 2009년부터 2023년까지 드라마 정주행은 딱 3번 했다. 바쁘고 피곤해서 대부분의 드라마는 안볼 거라 평소에 스포를 좋아하는데 글로리 시즌2는 정주행할 거라 스포를 피해다녔다.

 

ps2. 개인적으로 소소하게 영광을 되찾은 것은 귀걸이였다. 박연진 귀걸이 너무 예뻤다. 더 글로리 한 시즌을 정주행하고 났더니 직후에있는 학부모참관수업을 귀걸이없이 참석하는 것은 불가능하겠다고 느꼈다.

 


ps3. 

 시즌1보다 심하게 청소년시청불가 장면이 많다고 해서 문제의 장면이 나올때는 빨리 넘겼는데
넘기는 과정에서도 스틸샷들이 지나갈 수 있어서 같이 보던 미성년자들을 엎드리게 해놓고 넘겼다.
무슨 민방위 훈련처럼 '어린이들 엎드려!' 하면 눈가리고 엎어진다.

 

문제의 장면들은 이번까지 3번 정주행한 작은 언니가 예고해주고 나중에 운전해서 올 때 조수석에 앉아서 내가 해당장면을 물어보면 동영상 재생한 듯이 모든 대사를 외워서 들려줬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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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 포스팅 23.03.22.